남매의 여름밤
"독립 영화 후기"
방학 기간 동안, 아빠 병기(양홍주)와 함께 할아버지 영묵(김상동)집에서 지내게 된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그렇게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무더운 나날이 시작됩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연 많은 고모 미정(박현영)까지 집에 합세하면서 가족들은 기억에 남을 소중한 추억을 써 내려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영묵의 몸 상태가 악화됩니다. 이에 병기와 미정 그리고 옥주까지 각자의 생각을 품게 됩니다. 동주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이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 그들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독립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후기를 시작합니다.
가족
"우리의 삶"
같이 알아두면 좋은 정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무슨 일을 겪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남기며 아빠 병기와 옥주 그리고 동주는 편찮으신 할아버지 댁으로 향합니다. 방학 기간 동안 함께 지낸다고 말이죠. 이처럼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낯선 곳에서 무더운 나날을 보내는 옥주와 동주, 더 나아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영묵,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집 그리고 풍경 등이 옛 것의 느낌을 자아냅니다. 특히 옛날에 자주 볼 수 있었던 2층 집과 그 안의 구조 등이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묵묵한 영묵의 존재가 왠지 모르게 무서웠던 저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듣고 있는 노래도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이와 더불어 '인생이란 무엇일까', 삶에 치이는 아빠 병기와 고모 미정 그리고 옥주와 동주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비춥니다. 이처럼 두 가지 풍경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굉장히 보편적인 느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디에 있을 법한, 그리고 우리의 삶과 같은 물결이 이어지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일을, 또 다른 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 주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위안을 통해 보는 이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힌 윤단비 감독의 생각처럼 <남매의 여름밤>이 아마도 많은 분들께 공감 그리고 위로, 힘이 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안
"의미와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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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 추억과 현재를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시야가 줄어듭니다. 꼭 나에게만 이런 일이 터지는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윤단비 감독이 비친 보편적인 풍경으로 '저도 타인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에 빠지며 작게나마 위안이 되는 거 같습니다.
동시에 <남매의 여름밤>이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주제가 좋습니다.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 달리 보일 거 같아 매력적인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저는 '그리움', '성장', '관계'라는 주제가 돋보였습니다. 이 단락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영묵이 소파에 앉아 듣는 노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아빠 병기, 엄마에 대한 결핍이 있는 옥주와 동주의 모습을 통해 '그리움'에 대한 감정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돋보였던 주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비치는 '옥주의 성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메말라 왔습니다. 그 순간이 어느 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 더 그래왔던 거 같습니다.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자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극 중 병기와 미정은 돈과 집,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현실적인 판단을 합니다. 막내 동주는 아직 어리기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극 중에서 유일하게 굉장히 직설적이고 귀여운 웃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나이에 맞게 말이죠.
중간에 껴 있는 사춘기 소녀 옥주가 가장 애매한 상황입니다. 서서히 현실을 깨달아 가고 있기 때문이죠. 외모에 대한 고민, 아빠가 파는 신발이 짝퉁이었다는 사실 등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요양 시설로 보낼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나이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소파를 보며 울 때의 모습에서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하지만 아직 어린 옥주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며 옥주는 성장해 갈 것입니다. 어느 순간 아빠와 고모처럼 현실적인 사람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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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에서 <남매의 여름밤>은 <벌새>, <우리들>과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보다는 아쉬웠지만 충분한 재미와 여운, 그리고 오랜만에 독립 영화의 묘미도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추천! 이상 오늘 개봉한 윤단비 감독 연출작 <남매의 여름밤>의 따끈한 후기를 마칩니다. 현재 상황이 좋진 않지만 보게 된다면 저와 같이 흥미롭게 관람하시길 빌겠습니다.
시간은 관계를 허문다. 존재하는 것들의 형체를 지운다. 시간 속에서 풍화하는 존재와 함께 상실의 시간이 시작된다. 필연적으로 모든 관계는 끝내 헤어질 운명이 되고야 만다. 곁에 있어서 사소하던 것들은 언젠가 곁에서 사라짐으로써 마음으로 들이친다. 시계는 꼬박꼬박 제 자리로 돌아오지만 관계는 언젠가 멈춰버린 시간이 된다. 넘어오지 못한 시간 속에서 그 관계는 파도가 된다. 마음을 때린다. 눈이 아니라 마음에 닿는 추억이 되고 나서야 그 격랑이 뒤늦게 실감난다. <남매의 여름밤>은 바로 그 격랑을 뒤늦게 실감하는 한 소녀와 어느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벽에 걸린 작은 액자를 바라보던 옥주(최정운)는 아빠(양홍주)의 부름에 제 몸만큼 큰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선다. 한낮인데도 불을 끄니 어두워지는 반지하방에서 나온 옥주 옆으로 버려진 가구들이 즐비하다. 가족은 이사를 가는 중이다. 마냥 즐거운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철부지 어린 동생 동주(박승준)만 그저 방긋방긋하다. 가족의 짐을 실은 동네 곳곳에 빨갛게 그려진 ‘X’ 표시가 이 동네의 처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어린 동생이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할아버지 집 커?” 가족이 향하는 곳은 바로 아빠의 아빠, 즉 할아버지(김상동)의 집이다. 심지어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는 고모(박현영)까지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오게 되고, 할아버지 혼자 살던 집이 갑작스럽게 모인 가족 삼대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한다.
“첫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남매의 여름밤>은 감독 스스로의 말처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의 특정한 사연을 그린다기보단 어느 특정한 가족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의 시작부터 결코 낙천적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듯한 가족의 처지를 염려해야 할 것 같지만 <남매의 여름밤>은 관객에게 뻔한 걱정을 안기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무던하게 이어지는 매일 속에서 사소하게 일어나고 번지는 웃음과 갈등이 변박자의 리듬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바라보는 관객의 행위가 지난 경험을 환기하는 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영화적 체험에 가깝다.
반지하방에서 퇴거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은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됐음에도 누구 하나 특별한 구김살이 없어 보인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집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고모 역시 그런 상황에 이골이 났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인상이다. 가난 혹은 그로 인한 불행에 대한 걱정보다도 사소하게 떠오르는 고민을 끌어안은 매일이 찾아오고 그래서 간혹 예기치 못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버겁지 않게 해소하거나 역시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증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게 이어지는 매일의 일상이 쌓여가는 <남매의 여름밤>을 지켜보는 관객은 끝내 그 가족을 한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생생하다기보단 무던하게 그 자리에 들어앉은 듯한 느낌. 감정적인 몰입을 요구하는 대신 관객의 기억에 내재된 어떤 경험을 툭툭 건드리는 듯한 인상. 극적인 사건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거듭 발견하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의 공감대를 통해 관객을 향해 영화가 다가가고 관객의 호흡에 맞춰 영화가 말을 이어나가는 듯한 기분. <남매의 여름밤>은 그렇게 공감의 영화로 다가온다. 너무 사소해서 간과된 상실과 결핍이 밤하늘의 별처럼 각자의 마음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던 지난날의 어떤 계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남매의 여름밤>이 옥주의 감정을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감상의 입구로 삼되 주변부에 있는 가족 구성원의 감정 역시 하나하나 부지런히 눈을 돌려 돌보고 살피는 덕분이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여름밤을 보내는 남매란 옥주와 동주라는 어린 남매만을 지칭하는 것 같지 않다. 아빠와 고모라는 남매는 옥주와 동주의 어린 남매를 보살피는 어른이지만 한편으론 남매라는 관계 안에서 온전하게 독립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투명한 우애가 드러나는 어린 남매의 일상은 별다른 갈등 없이 맥주캔을 부딪치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유산을 둘러싼 속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린 남매와 어른 남매는 저마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우애와 갈등으로 굴러가는 하루하루로 점철된 여름밤을 보낸다.
가족은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는 사이이기도 하다. <남매의 여름밤>은 여느 가족 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족끼리 모여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밥만큼이나 잠과 꿈을 묘사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가족영화다. 옥주를 비롯한 가족들이 잠에 들거나 깨는 순간은 영화에서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아빠와 고모에게 각각 부모님이 등장한 꿈 얘기를 듣게 되면서도 “난 꿈 안 꿔”라고 말하던 옥주는 의외의 장소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꿈을 꾸며 스스로가 부정하던 마음 깊은 곳의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초현실적인 체험처럼 묘사되는, 옥주의 꿈으로 추정되는 이 장면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영원 지속할 수 없기에 노스탤지어로서 영원 지속되는 관계임을 환기시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담담해지고, 결핍은 추억이 되지만 결코 잊히지 않아서 지속되는 영속성. 결국 아들은 어딘가 불편한 아버지를 그리며 살고, 딸은 미운 어머니를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가슴속 어딘가에 박힌 ‘미련’이 된 관계로서 돌고 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머니는, 딸은, 아들은 그렇게 가족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마치 각기 다른 가수가 부른 한 노래처럼, 그리움의 대상은 변하고 각각의 감정적 형태도 사뭇 다른 것 같지만 그 모든 감정의 뿌리는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매년마다 찾아오는 여름밤이 거듭되는 사이, 간혹 기억 한편에 묻혀있던 어떤 기억이 문득 떠올라 다음 세대에게 구전된다. 어린 시절 무뚝뚝하던 할아버지가 어린 아빠에게 했다던 장난은 어른이 된 아빠를 통해 어린 아들에게 행해지고 어느 여름밤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빠의 자동차에서 들었던 옛 노래를 홀로 즐기는 할아버지의 미소를 몰래 간직한 손녀의 여름밤도 여느 여름밤에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남매의 여름밤은 언젠가 흩어지고야 말 시간이겠지만 영원히 잊히지 않는, 관객 모두의 밤일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절이 있고, 언제나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어느 계절에 문득 떠오를 어떤 그리움. <남매의 여름밤>은 바로 그 계절에 공감하는 관객을 위한 영화다. 상실과 결핍을 추억으로 품고 성장해온 모든 이들을 위해 찾아온 어떤 계절.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열대야의 열기처럼 여운이 지속된다. 그 여운이 지난 계절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게 마음이 전해지는 영화가 있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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